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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철호의 #길

[강경 자전거여행 스케치]

'갱갱이'라는 타임머신

2022. 04. 29 by 차철호 기자

고백건대, 몰랐다. 강경을 잘 몰랐다. 그저 젓갈과 옥녀봉 정도. 금강자전거길 종주 중 스쳐 지나갔던 기억이 전부였다. 기묘한 곳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길래 책과 온라인을 뒤적뒤적했다. 알면 알수록 나온다. 화려했던 과거, 근대문화유산과 저항의 역사, 옛 학자들의 숨결과 성지순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옥황상제 딸도 반했다는 금강변의 아름다움도 빠뜨릴 수 없다. 갱갱이(강경을 일컫는 사투리)란 이름의 타임머신, 그날 이야기를 시작한다. 

 

'갱갱이'라는 타임머신

<1편>
미내다리 가보셨소? 
팔괘정의 청초안도 신기합디다

 

#1. 300년 전 만든 다리

오전 9시 44분 서대전역에서 출발한 무궁화호는 10시 30분 강경역에서 우리 일행을 내렸다. 승객이 많지 않아 자전거도 쉽게 하차. 네 번째 온 강경역. 정겨운 역전 풍경은 오늘도 반갑게 맞아준다. 밖으로 나온 일행은 동쪽 골목으로 길을 잡았다. 길손 발길을 잡아끄는 옛 다리가 강경에 있다 해서 그 다리를 먼저 만나러 간다. 유려한 형태가 뭇사람들을 꼬드겨서 SNS ‘핫플’로 자리매김한 다리 되시겠다. 조선 영조 7년, 1731년에 만들었다는 그 다리가 궁금했다.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30m도 안 가서 멈추는 일행. 왼쪽에 거대한, 그러나 많이 낡은 목조건물이 발길을 잡았다. 일제강점기 때 곡물을 저장하는 미곡창고로 쓰였다는 창고. 일제는 1911년 강경에 5개의 대형 도정공장과 미곡창고를 세웠다. 충청지역과 호남평야에서 거둬들인 미곡을 집하해 도정한 뒤 일본으로 보냈다. 강경을 미곡 수탈의 근거지로 사용한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미곡창고는 1935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서글프도록 낡은 이 창고는 전쟁과 식민지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미곡창고 앞을 통과하고 있다. 아, 서글프도록 낡은 창고의 사연.
미곡창고 앞을 통과하고 있다. 아, 서글프도록 낡은 창고의 사연.

다시 페달을 밟는다. 논산경찰서 앞 도로를 만나 동쪽으로 계속 간다. 곧 학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난다. 왼쪽엔 1937년 지은 강당(국가등록문화재)을 품은 강경중앙초등학교가 있고 맞은편엔 강경고등학교와 강경여자중학교가 있다. 강경고와 강경여중은 스승의 날 발원지다. 교내에 들어서면 키가 큰 스승의 날 기념탑을 만날 수 있다. 조금 더 가면 ‘강상’ 강경상고가 있다. 1920년 개교해 100년이 넘은 강경상고는 금융권 인재를 대거 배출한 명문이다. ‘고졸 신화’로 유명한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이 학교 출신이다.

스승의 날 기념탑. 강경고와 강경여중은 스승의 날 발원지다.
스승의 날 기념탑. 강경고와 강경여중은 스승의 날 발원지다.

강경상고를 지나면 강경천이 기다리고 있다. 다리(상강경교) 건너 강경천 둑방길을 따라 달린다. 몇 분 달리지 않아 안쪽 둔치에 있는 돌다리를 만난다. 늠름하다. 생각보다 크다. 아름답다. 감탄사가 나온다. 기품이 느껴진다. 300년 전에 강경촌 재력가들이 재물을 모아 세웠다는 이 다리는 삼남 일대에서 가장 큰 다리였다.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이 다리를 보고 왔냐고 물어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무지개다리 자태도 곱다. SNS에서 핫 포토존이 된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다리 위로 올라가 본다. 걸어본다. 걸터앉아 바람 구경을 한다. 하늘 색깔이 오락가락한다. 흐림 예보됐는데 조금씩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일행은 다양한 각도와 포즈로 기념사진을 남긴다. 인생사진 한 장 건졌다. 다리 이름도 곱다. 강경 미내(渼奈)다리. 옛날 강경천을 미내(渼奈)라고 부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2. 1626년 금강변 언덕

왔던 길을 거슬러 황산대교가 있는 금강변으로 향한다. 황산대교를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강경지방 문화의 거리’ 안내판을 마주한다. 황산대교부터 돌산에 이르는 구간이다. 이 거리에선 죽림서원·임리정·팔괘정 등 조선시대 유적을 잇따라 만난다. 죽림서원(竹林書院)은 조선 인조 4년, 1626년에 창건된 서원으로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이 제향돼 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압권이다. 죽림서원을 왼쪽에 두고 오른쪽으로 짧은 계단 언덕길을 밟으면 임리정(臨履亭)의 유려한 곡선을 만난다. 임리정은 사계 김장생이 1626년 건립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원래 이름은 이곳 지명을 따 황산정(黃山亭)이었는데 시경의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 같이 하며, 엷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 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는 구절에서 따와 임리정으로 바꿨다고 전한다.

임리정 언덕에서 내려와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든다. 자전거를 한곳에 세워두고 살짝 오르막을 오른다. 금강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한 팔괘정(八卦亭)이 일행을 맞이한다. 우암 송시열이 세운 곳이다. 우암은 스승인 김장생이 임리정을 건립하고 강학을 시작하자, 스승과 가까이 있고 싶어 150m 떨어진 이곳에 팔괘정을 짓고 제자들에게 강학을 했다. 팔괘정은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를 집필한 곳이다. 이는 이중환이 직접 택리지 발문에서 밝히고 있다. “내가 황산강가에 있으면서 여름날에 아무 할 일이 없었다. 팔괘정에 올라, 더위를 식히면서 우연히 논술한 바가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산천, 인물, 풍속, 정치 교화의 연혁, 치란득실의 잘하고 나쁜 것을 가지고 차례를 엮어 기록한 것이다.”

팔괘정. 황산대교가 보이는 툇마루에 앉아있다가 뒷마당으로 간다.
팔괘정. 황산대교가 보이는 툇마루에 앉아있다가 뒷마당으로 간다.

금강과 황산대교가 내다뵈는 팔괘정 툇마루에 걸터앉아 물 한 모금 마신다. 앞마당엔 고목이 부르는 바람의 노래가 보이고 뒷마당으로 가면 샤르륵 샤르륵 대숲의 노래가 들린다. 홀린 듯 뒤뜰로 간다. 대숲 사이로 암벽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바위에 새겨진 글자도 보인다. 두 군데 바위에 세 글자씩 새겨져 있다. 우암이 새겼다는 ‘靑草岩(청초암)’과 ‘夢挂壁(몽괘벽)’이다. 안내판은 ‘청초암’이라 안내하는데, 자세히 보면 암(岩)이 아니라 언덕 안(岸)처럼 보인다.

청초암? 청초안?
청초암? 청초안?
몽괘벽
몽괘벽

어떤 메시지일까, 한참 쳐다본다. 푸른풀바위? 푸른풀언덕? 꿈속에서 벽에 걸다? 개인적인 해석을 붙여보면, ‘청초’와 ‘몽괘’는 어리다, 미숙하다, 어리석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을 일깨우는 바위(언덕) 혹은 우암이 제자들에게 던져준 교육‧교화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다. 우암의 낮은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팔괘정을 찍다보면 뒤쪽에 우뚝 솟은 등대가 사진에 함께 걸린다. 돌산전망대(황산근린공원 전망대)다. 팔괘정에서 몇 계단만 오르면 전망대에 이른다.

금강 강가에서 본 돌산전망대와 왼쪽 젓갈전시관. 
금강 강가에서 본 돌산전망대와 왼쪽 젓갈전시관. 

#3. 돌산전망대에 오르면

봄의 장엄이 걷잡을 수 없이 펼쳐지는 오후, 탁 트인 금강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광활한 금강 기세에 잠시 말문을 닫는다. 흐린 하늘, 날씨가 아쉽지만 마음까지 시원한 풍광이 오감을 적신다. 빙글빙글 계단을 다시 밟아 등대 같이 생긴 전망대 위로 오른다. 팔각의 전망대가 유리창으로 둘러있다. 아래보다 훨씬 더 넓은 풍경을 ‘즐감’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센스쟁이의 손길, 깨끗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중간중간 구멍을 내놨다. 미닫을 수 있는 문을 달았다. 배려. 작은 배려가 방문객들을 미소짓게 한다. 360도 파노라마다. 금강을 열었던 시선은 포구와 옥녀봉 방향에 걸려있다. 그 뒤로 물길 따라 부여땅에도 시선이 닿는다. 시대의 흥망성쇠를 품은 강경 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다보며 과거를 상상한다.

돌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강경 읍내.
돌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강경 읍내.

강경은 일찌감치 번성했다. 지금은 초라한 소읍이지만, 아주 잘나가던 상업도시였다. 1899년 군산항 개항으로 금강이 근대적 내륙 수로로 활용되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충청·전라도 유역의 곡창지대 화물이 모여들어 말 그대로 ‘물류집산지’가 됐다. 1751년에 이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와 전라도의 육지와 바다 사이에 위치하여서 금강 남쪽 들 가운데에 하나의 큰 도회로 되었다”고 기술했다. 모든 물자가 이곳에서 교역이 되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강경에는 자연스럽게 장이 열렸다. 평양시장, 대구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꼽혔다. 강경포구는 1930년대까지 원산항과 더불어 우리나라 2대 포구였다. 일제강점기에 내륙수탈의 전초기지였던 강경은 도로와 철도에 물류를 내주면서 해방 이후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는다. 편리한 교통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옛 강경시장 모습. 붐비는 분주함 속에서 번성했던 시대를 추측해볼 수 있다. 사진=노논산시 제공  
옛 강경시장 모습. 붐비는 분주함 속에서 번성했던 시대를 추측해볼 수 있다. 사진=논산시 제공  

전망대에서 내려와 올라왔던 반대방향으로 내려간다. 몇 계단을 밟으면 황산근린공원 입구에 다다른다. 입구엔 박범신(1946~ ) 소설가의 문학비가 있다. 박범신 작가는 논산 연무에서 태어나 1961년부터 강경에서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그는 “강경은 나의 문학적 자궁”이라 표현한다. 문학비 건너편엔 커다란 여객선 모양 강경젓갈전시관이 있다. 자전거를 묶어뒀던 곳으로 간다. 자전거를 풀고 다음 여정을 밟는다. 근대 강경의 타임머신을 탈 차례다.


‘갱갱이’라는 타임머신

<2편>
해 질 녘 옥녀봉에서 만나요
오늘 저녁은 젓갈백반 어때요?

강경역사관(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강경역사관(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4. ‘구락부’는 불편해

골목골목 파고든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짓고 살던 적산가옥이 곳곳에 남아 있고, 현대식 건물과 확연히 다른 모양을 한 건물 사이를 느릿느릿 달린다.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자전거 안장에 오른 지 20여 분, ‘야인시대’ 같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붉은 벽돌이 강렬하다. 현재 강경역사문화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수탈의 첨병 역할을 하던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이 있던 곳이다. 1905년 자본금 50만 환의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이 시작이었다. 일제에 의해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으로 사용됐다. 해방과 더불어 한일은행 강경지점으로, 다시 충청은행 강경지점으로 바뀌었다. 명실공히 근대 번성했던 강경지역의 상권을 대변하는 대표 금융시설이다. 강경역사문화관 옆엔 ‘강경구락부’란 이름을 붙인 공간이 나온다.

강경구락부. 식당·카페가 있고 호텔도 있다.
강경구락부. 식당·카페가 있고 호텔도 있다.

구한말 근대 시절을 재현한 곳이다. 작은 광장을 둘러싼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시간을 100년 전쯤으로 되돌려 놓았다. 드라마세트장 느낌이 난다. 식당·카페가 있고 호텔도 있다. 그러나 아쉽기도 했다. 이름을 꼭 ‘구락부’라 했어야 했을까. 그 시절 느낌을 살리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불편함이 계속 남는다.

다시 비슷비슷한 골목 투어. 거기가 거기 같다. 큰 간판을 내건 젓갈가게들이 계속 출현한다. 강경역사문화관과 가까운 구 강경노동조합 건물(現 강경역사문화연구소)을 찾는다. 일제강점기 1920년대 내륙 수산물은 대부분 강경포구를 거쳐 유통된 만큼 오가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당시 조합원 수가 2000~3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하루 약 200여 척 배가 하역작업을 할 정도였다고. 1925년 건축된 일본 목조건축 양식 건물로 건축당시 2층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1층만 남아 있다. 연수당한약방으로 간다. ‘강경 구(舊) 연수당건재한약방’이라는 명칭으로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제10호)된 이 건물은 강경이 당시 얼마나 발전한 곳이었는지 알려준다. 1923년에 세워진 ‘남일당한약방’은 경성을 뺀 지역에 있는 한약방 중 가장 큰 곳으로 손꼽힐 정도였다. 연수당한약방 바로 뒤엔 1924년 최초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강경성결교회와 김대건 신부 유숙 성지도 있다.

 

#5. 옥녀봉 노을이 보고 싶었다

강경은 ‘강가의 햇볕고을’이다. ‘江(가람 강)+景(볕 경)’자의 ‘江景(강경)’이다. 강 건너 서쪽 부여로 지는 저녁노을은 강경여행의 하이라이트다. 그렇다, 옥녀봉으로 간다. 옥녀봉은 강경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해발 44m. 봉우리[峰]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보여줄 건 다 보여준다. 옥녀봉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는데 주차장이 있는 두 코스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북옥리 옥녀봉골목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금강포구 쪽 주차장에서 바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일행은 옥녀봉골목으로 올라 금강포구길로 내려올 계획이다.

강경 포구의 역사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는 좁다란 골목길을 오른다. 골목에 들어서면 ‘구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 관사(옥녀봉 예술촌)’ 이정표가 보인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여기저기 견공들이 마구 짖어대는 바람에 골목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길을 이어갔다. 1923년 한옥 교회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을 만난다. 오르막이다. 그리 가파르지도 않은데, 결국 자전거를 끌면서 걷는다. 순간 옆으로 쌩~, 그의 자전거가 지나쳐갔다. 힘도 좋아. 금강이 내다뵈는 박범신 소금집 앞에 섰다. 박범신 작가 소설 ‘소금’의 배경이 된 집이다. 집앞 낮은 담에 벽화와 함께 쓰여진 문장이 인상적이다. “이것저것 나누지 않고 하나로 합쳐 도저하게 흐르는 것이야말로 강물의 일이 아니던가.” 옥녀봉에서 내려가는 포구길엔 ‘강경산 소금문학관’도 있다.

박범신 '소금' 집. 박범신 작가 소설 ‘소금’의 배경이 된 집이다.

봉수대가 보인다. 정상이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일행을 맞아준다. 금강과 너른 들녘, 강경읍내가 어우러진 풍광이 파노라마다. 금강의 장엄이 걷잡을 수 없이 다가온다. 물줄기 세 갈래가 보인다. 금강과 논산천과 강경천이다. 하나로 합쳐 도저하게 흐른다. 금강이다. 금강종주자전거길도 짚어본다. 부여로 갈 때, 하굿둑으로 갈 때 저 길을 달렸었지. 10년 전 금강을 함께 달렸던 그 동지들과 오늘도 함께다. 그나저나 날이 너무 흐리다. 뿌옇기까지 하다. 바람도 엄청 부는 옥녀봉. 멋진 풍광을 드론으로 찍으려 했는데 실패다. 노을… 힘들다.

"노을빛이 설레게 붉다. 화려했던 강경 과거의 명성의 빛 같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강경은 요즘 부활가를 부르고 있다. ‘시간이 멈춘 곳 강경’이 아닌 ‘재도약하는 강경의 시간’ 속으로 진입하길 기대한다."

이렇게 쓰려고 했는데 노을을 못 봤다. 하나둘 켜지는 불빛을 보며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에선 우리나라 최초 침례교회를 만날 수 있다. 1897년 폴링 선교사가 건축한 이 교회는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지어진 ㄱ자형 교회다. 또 옥녀봉 바로 아래 암각 해조문도 볼 수 있다. 시각과 함께 수심의 높낮이를 계량화하여 기록한 최초의 것이다. 누구라도 쉽게 보고 고기잡이와 항해, 소금생산 등 해양 관련 활동에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 아래엔 박범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강경산 소금문학관’이 있다.

 

#6. 빠뜨릴 수 없지, 젓갈백반

예약한 식당에 도착했다. 젓갈 대잔치다. 16가지, 명란젓을 비롯해 밴댕이젓, 아가미젓, 씨앗젓갈, 가리비젓, 갈치속젓, 토하젓, 어리굴젓, 오징어젓, 황석어젓, 비빔오징어, 명태무침, 낙지젓, 청어알, 꼴뚜기젓, 창란젓이 다른 반찬과 함께 나왔다. 따뜻한 흰 쌀밥 위에 젓갈을 올린다. 한 입 크게 먹는다.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바다향이 입안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번엔 상추에 싸서 먹는다. 짭조름한 맛이 상추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같이 나온 청국장까지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으면 행복감이 무한대로 밀려온다. 확실히 도둑은 도둑이다. 밥그릇이 금세 비었다. 두 공기째 쥐고 앉는다. 오늘 개인적인 픽은 씨앗젓갈이다. 처음부터 고소하게 씹히는 맛이 만만찮았는데, 들어보니 낙지‧오징어‧청어알을 다져서 해바라기씨앗을 넣고 담근 젓갈이라고 한다. 행복한 저녁이었다. 강경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밥상이었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강경역으로 가는 길. 거리로 나섰다. 골목이 조용하다. 문 닫고 이미 하루를 마감한 곳이 많았다. 거리의 불빛은 소박했다. 강경 주민들도, 관광객도 많지 않다는 얘기리라.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돌아오면서 그 소박한 불빛이 자꾸 떠올랐다. ‘시간이 멈춘 곳 강경’이 아닌 ‘재도약의 강경’이 되길 소원한다. 

글=차철호 기자 ich@kakao.com
사진=박정환‧김동직‧김형중‧박동규‧차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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