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 김현호 기자] 군 제대 후 창호와 본격적 인연/창업하자마자 IMF 사태 직면/직원급여 수개월 밀리기도/正道 경영으로 6년만에 모두 지급
“인내·끈기 갖고 최선 다 하라”

바를 정(正)에 곧을 직(直)이 합쳐진 정직은 인간사에서 가장 높이 사는 덕목이다. 보이진 않지만 정직이 가져다주는 힘은 거대하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여도 누구나 실천하진 못 한다. 특히 돈벌이가 주된 목표인 경영의 세계에선 ‘정직’이 유독 낯설어 보인다. 이익 추구가 최우선 가치인 집단에게 정직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능하다는 야유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정직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경원알미늄 양동철(54) 대표이사는 정직이란 단어와 딱 알맞은 경영자다. “정직을 위해 노력한다”는 그의 경영 철학이 지금의 경원알미늄을 만든 원동력이다.

#. 남달랐던 기질
충남 논산 출신인 양 대표는 제법 큰 축산업을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시골 출신이면 으레 그랬듯이 친구들과 해질 때까지 놀고 집에 오면 소며 돼지며 가축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단다. 어느 날 양 대표의 아버지는 그에게 몇 마리의 토끼를 키우도록 했다. 전적으로 모든 걸 맡겼기에 어찌 보면 양 대표의 인생 첫 사업인 셈. 이제껏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자주 도왔던 그에게 토끼 몇 마리 키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고. 일이 제법 잘 맞았는지 그의 손을 탄 토끼는 빠른 속도로 늘었다. 토끼의 번식 속도는 원체 빠른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금세 개체수가 불었다. 몇 마리 키울 땐 일도 아니었지만 사육 규모가 커지다 보니 방목으로만 토끼에게 먹이를 주는 게 쉽지 않았는데 그러다 생각한 게 소·돼지에게 먹인 뒤 남은 사료를 토끼에게 먹이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협상을 통해 사료를 확보할 수 있었고 덕분에 사시사철 수십 마리의 토끼는 굶는 일이 없게 됐다. 그렇게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가계에 적잖은 보탬이 됐다.

소싯적부터 기질이 남달랐던 것이다. 가축을 사육하는 데 재능이 있던 그는 학창시절을 거쳐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집안 일을 도왔다. 하지만 가계는 장남이 물려받는 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양 대표의 형이 가업을 잇기로 하면서 그는 먹고 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문뜩 군대 선임이 했던 “포클레인 기사로 일하면 돈 좀 번다”란 말이 떠올라 학원을 다녔다. 당시 국내엔 아파트붐이 일어 부르는 게 값이 정도로 포클레인 기사에 대한 수요가 상당했다. 곧바로 자격증을 따 여러 현장을 누볐다. 그러다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창호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만나게 됐다. 여러 현장에서 오고가며 마주쳤는데 그날따라 유독 궁금했단다. 관계자로부터 창호 업계에 대한 동향을 경청하다보니 거기에 꽂혀 창호 관련 일을 배우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곧장 창호 사업을 하는 지인을 찾아가 취업시켜 달라 졸랐고 2년만 배우고 자신만의 사업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가업은 형님이 잇기로 했고 할 일을 찾던 중 군대 선임 말을 떠올려 포클레인 기사 자격증을 따 온갖 현장을 다녔어요. 그러다 우연찮게 샷시라 불리는 창호를 보게 됐는데 이거 돈 되겠다 싶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아파트 공사 현장은 포클레인 작업 한 번이면 되는데 창호는 수백, 많게는 수천 세대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렇게 창호 일을 하는 지인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 창업과 함께 맞은 IMF 사태
당초 2년만 배우겠다고 굳게 마음먹었기에 양 대표는 입사 2년 뒤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곧바로 사업체를 차리지 않고 다른 창호 업체 문을 두드렸다. 생각했던 것만큼 사업 자금이 모이지 않은 이유도 있었으나 해당 분야의 ‘끝판왕’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더 많은 배움을 자극했다. 그렇게 한두 군데 더 창호 업체를 찾아 다양한 기술을 습득했고 업계서 제법 잔뼈 좀 굵다는 이들을 모아 지인과 함께 1997년 세진건업을 창업했다.

대표이사는 지인에게 맡기고 양 대표는 전무 정도의 역할을 자처했단다. 지인은 사업 수주에 능했고 초반엔 세진건업을 찾는 업체들이 상당했지만 그게 하필이면 1997년이었다. 대기업도 나가 떨어진 IMF 사태를 관통한 거다. 수완 좋은 대표이사 덕분에 일감이 끊이지 않았으나 문제는 수금이었다. 돈이 안 들어오니 직원들에게 급여 주기 어려운 날이 잦았고 결국 6개월 연속 급여를 밀렸다. 경영이 점차 악화되는데 대표이사는 거래처를 몰아세우지 못 했다. 돈줄이 꽉 막혀 버린 거다.

“수주는 계속되는데 수금이 안 되니 직원들 월급을 못 줬죠. 친인척은 물론 동네 동생들 데려와 입사시켰는데 한동안 월급을 못 주니 얼굴 들고 고향 동네를 못 돌아다니겠더라고요. 그리고 대표이사란 양반은 ‘아휴…’ ‘어려우시면 나중에 천천히 주셔도 돼요’라고 통화하는데 참 답답하더라고요. 결국 대표이사는 극심한 정신적 압박을 받았고 별 수 없이 제가 경영을 맡아야 했습니다.”

양 대표는 평일엔 일을 하고 주말엔 거래처를 찾아 다녔다. 돈을 주든 안 주든 그냥 사무실에 말없이 앉아있었고 매주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씩이지만 수금이 되기 시작했다. 건설현장서 쓰다 남은 자재를 모아 팔기도 했다. 자신 역시 돈 한푼 가져가지 못했지만 수금이 되는 대로 직원들부터 챙겼다. 그 무렵 사명을 진성건업으로 바꿨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수금이 어려운 하청보단 관급 공사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고 약 6년이 지나서야 밀린 급여를 모두 청산할 수 있었다. 오롯이 도의적 책임을 다 하겠다라는 신념아래 끈기와 인내를 갖고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 놓은 순간이다.

#. “인내 끈기 갖고 정도 경영해야”
다양한 관급공사에 참여하면서 진성건업은 기존 창호를 제작하고 납품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시공, 유통하는 것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10년엔 조달시장 진입에도 성공하고 현재의 경원알미늄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IMF란 초유의 사태를 버티고 나름 성공가도를 달리는 중이나 이 과정 역시 만만치 않았고 간혹 ‘경영을 접어야 하나’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단다. 그럴 때마다 그는 소소한 취미를 가지며 슬럼프를 이겨냈고 무엇보다 인내와 끈기를 갖고 정직경영으로 나름의 성공을 맛보고 싶었던 욕망이 더 컸다. 최근에도 작은 슬럼프가 왔으나 글쓰기란 취미를 가지며 조금의 여유를 가지게 됐다. 문득 자서전을 써야 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조금 미뤄뒀다. 더 큰 성공으로 반드시 달콤한 열매의 맛을 보겠다면서 말이다.

“경영이란 게 어디 쉽나요.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정말 정직하게 정도를 걸을 수 있도록 인내와 끈기를 갖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단 마음이 컸던 덕분이죠. 특히 경영을 하다 보면 부침이 올 때가 있는데 이걸 이겨내야 사람은 더 성장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사 무엇이든 죽을 때까지 하겠단 마음을 가져보세요. 찾아오는 결과는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끊임없이 노력해서 찾아올 결과를 즐기고 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한 번 소소하게 해볼 생각입니다.”

경원알미늄은 코로나19란 악재에서도 대통령 표창과 국토부장관 표창을 비롯해 7개의 정부 포상을 받았다. 남들이 보면 경영자로서 정점에 올랐다고 할 정도지만 그는 여전히 배고프다. 아직 오를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잠시 접어둔 자서전의 꿈, 그 첫 문구가 자못 궁금하다.

글·사진=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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